누구를 위해 문을 여는가: 제우스의 법과 주님의 식탁 > 칼럼 > 한국교회공보

팝업레이어 알림

팝업레이어 알림이 없습니다.

칼럼

HOME  >  오피니언  >  칼럼

[DSTV칼럼] 누구를 위해 문을 여는가: 제우스의 법과 주님의 식탁

김의선 목사 기자
작성일 2026-09-22 07:10

본문

최근 개봉한 영화 ‘오디세이’에는 ‘제우스의 법’이라는 흥미로운 개념이 등장한다고 합니다. 낯선 이를 환대해야 하는 이유가 그가 혹시 변장한 신일지도 모르기 때문이라는 고대 그리스인들의 관습입니다. 일면 고귀해 보이지만, 그 동기는 사실 두려움과 자기 보존에 가깝습니다. 신의 노여움을 살까 두려워, 혹은 신에게서 복을 받을까 기대하며 베푸는 조건적인 친절입니다. 이는 우리의 신앙과 삶을 돌아보게 하는 좋은 거울이 됩니다. 우리는 과연 어떤 마음으로 이웃에게 손을 내밀고 있습니까?

성경이 가르치는 환대는 ‘제우스의 법’과는 그 뿌리부터 다릅니다. 우리의 환대는 두려움이나 대가에 대한 기대가 아닌, 우리가 먼저 받은 헤아릴 수 없는 사랑과 은혜에서 시작되기 때문입니다. 빅토르 위고의 소설 ‘레 미제라블’에서 미리엘 주교가 보여준 사랑이 바로 그 빛나는 예시입니다. 굶주림에 지쳐 빵 한 조각을 훔친 죄로 19년간 옥살이를 한 장 발장. 세상에 대한 증오로 가득 찬 그에게 주교는 따뜻한 잠자리와 음식을 내어줍니다. 그러나 장 발장은 은식기를 훔쳐 달아나다 경찰에게 붙잡히고 맙니다.

모두가 그의 인생이 끝났다고 생각한 순간, 주교는 이렇게 말합니다. “아니, 이 사람은 내게 은촛대도 받아 가기로 했는데 왜 이것은 두고 갔소?” 주교는 장 발장을 비난하거나 정죄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자신의 가장 소중한 은촛대까지 내어주며 그의 죄를 덮어주었습니다. 이것은 ‘제우스의 법’을 뛰어넘는 사랑입니다. 장 발장이 변장한 신이어서가 아니라, 그가 비참한 죄인임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형상을 지닌 한 영혼이었기 때문입니다. 주교의 이 무조건적인 사랑은 장 발장의 얼어붙었던 마음을 녹이고, 그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꾸는 구원의 시작이 되었습니다.

우리 역시 장 발장처럼 하나님 앞에 용서받을 수 없는 죄인이었습니다. 그런 우리에게 주님은 십자가의 사랑으로 다가오셔서 우리의 모든 죄를 덮어주시고 새로운 삶을 선물해 주셨습니다. 우리가 이웃을 섬기고, 낯선 이를 환대해야 하는 이유는 바로 이 기억 때문이어야 합니다. 내 옆의 이웃이 나에게 어떤 이익을 줄 수 있는 사람이어서가 아니라, 그저 주님의 사랑을 함께 받은 형제요 자매이기 때문에, 그리고 그를 통해 우리가 섬겨야 할 주님을 보기 때문입니다.

마태복음 25장 40절은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합니다. “임금이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 하시고” 오늘 우리의 문을 두드리는 작은 자가 있습니까? 그를 맞이하는 우리의 마음이 제우스에 대한 두려움이 아닌, 우리를 위해 식탁을 베푸신 주님에 대한 사랑과 감사로 채워지기를 소망합니다.
기사 공유하기
추천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