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STV칼럼] 내 마음의 벙커를 넘어서
김의선 목사 기자
작성일 2026-08-24 07:10
본문
우리의 인생은 종종 예측 불가능한 장애물로 가득한 골프 코스와 같다는 생각을 합니다. 평탄한 페어웨이를 걷는 날도 있지만, 어느 순간 깊은 벙커에 빠지거나 워터 해저드 앞에서 절망하기도 합니다. 얘기치 못한 질병, 관계의 깨어짐, 억울한 오해와 같은 인생의 벙커에 빠졌을 때, 우리 마음에는 ‘원망’이라는 모래 먼지가 일어나기 쉽습니다.
세계적인 골프 선수였던 폴 애징거에게 가장 깊은 벙커는 필드 위가 아닌, 암이라는 진단이었을 겁니다. 모든 것을 앗아갈 수 있는 그 절망 앞에서 그는 하나님을 원망할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원망의 클럽 대신 믿음의 클럽을 잡았습니다. 그리고 자녀들에게 고통 속에서도 하나님을 신뢰하는 아버지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고백했습니다. 원망과 불평이 아닌, 믿음과 감사의 유산을 남겨주고 싶었던 그의 마음이 깊은 감동으로 다가옵니다.
C.S. 루이스는 그의 책 『순전한 기독교』에서 “모두가 용서는 아름다운 생각이라고 말한다. 자기에게 용서할 일이 생기기 전까지는”이라고 썼습니다. 그렇습니다. 용서는 참으로 어렵습니다. 내 마음을 할퀴고 간 상처를 없던 일로 하기란 불가능에 가깝게 느껴집니다. 하지만 벙커에 빠진 공을 그대로 두면 경기를 이어갈 수 없듯이, 원망이라는 벙커에 우리 마음을 계속 내버려 두면 우리는 영적 성장의 걸음을 한 걸음도 내디딜 수 없습니다.
혹시 지금 당신의 마음을 무겁게 짓누르는 원망의 벙커가 있습니까? 오랫동안 용서하지 못해 관계가 단절된 사람이 있습니까? 폴 애징거의 삶은 우리에게 조용히 말을 건넵니다. 그 벙커에서 나올 수 있는 힘은 우리 자신에게 있지 않다고, 오직 십자가에서 우리를 위해 모든 것을 내어주신 주님을 바라볼 때 가능하다고 말입니다.
“누가 누구에게 불만이 있거든 서로 용납하여 피차 용서하되 주께서 너희를 용서하신 것 같이 너희도 그리하고” (골로새서 3:13). 주님께서 우리를 용서하신 그 크신 사랑을 기억하며, 오늘 용기를 내어 원망의 벙커에서 빠져나오는 한 걸음을 내디뎌 보면 어떨까요? 그럴 때 우리는 비로소 자유의 페어웨이에서 주님과 함께 기쁨의 경기를 계속해 나갈 수 있을 것입니다.
세계적인 골프 선수였던 폴 애징거에게 가장 깊은 벙커는 필드 위가 아닌, 암이라는 진단이었을 겁니다. 모든 것을 앗아갈 수 있는 그 절망 앞에서 그는 하나님을 원망할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원망의 클럽 대신 믿음의 클럽을 잡았습니다. 그리고 자녀들에게 고통 속에서도 하나님을 신뢰하는 아버지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고백했습니다. 원망과 불평이 아닌, 믿음과 감사의 유산을 남겨주고 싶었던 그의 마음이 깊은 감동으로 다가옵니다.
C.S. 루이스는 그의 책 『순전한 기독교』에서 “모두가 용서는 아름다운 생각이라고 말한다. 자기에게 용서할 일이 생기기 전까지는”이라고 썼습니다. 그렇습니다. 용서는 참으로 어렵습니다. 내 마음을 할퀴고 간 상처를 없던 일로 하기란 불가능에 가깝게 느껴집니다. 하지만 벙커에 빠진 공을 그대로 두면 경기를 이어갈 수 없듯이, 원망이라는 벙커에 우리 마음을 계속 내버려 두면 우리는 영적 성장의 걸음을 한 걸음도 내디딜 수 없습니다.
혹시 지금 당신의 마음을 무겁게 짓누르는 원망의 벙커가 있습니까? 오랫동안 용서하지 못해 관계가 단절된 사람이 있습니까? 폴 애징거의 삶은 우리에게 조용히 말을 건넵니다. 그 벙커에서 나올 수 있는 힘은 우리 자신에게 있지 않다고, 오직 십자가에서 우리를 위해 모든 것을 내어주신 주님을 바라볼 때 가능하다고 말입니다.
“누가 누구에게 불만이 있거든 서로 용납하여 피차 용서하되 주께서 너희를 용서하신 것 같이 너희도 그리하고” (골로새서 3:13). 주님께서 우리를 용서하신 그 크신 사랑을 기억하며, 오늘 용기를 내어 원망의 벙커에서 빠져나오는 한 걸음을 내디뎌 보면 어떨까요? 그럴 때 우리는 비로소 자유의 페어웨이에서 주님과 함께 기쁨의 경기를 계속해 나갈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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