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STV칼럼] 고통의 끝에서 만나는 소망
김의선 목사 기자
작성일 2026-08-20 07:10
본문
프랑스에서 조력 사망이 합법화되었다는 소식을 접하며 마음이 무거워졌습니다. 극심한 고통 속에 있는 이들의 절망이 얼마나 깊었으면, 스스로 생을 마감하는 길을 법으로 열어달라고 했을까 생각하니 가슴이 아려옵니다. 세상은 이제 고통을 피해야 할 악으로 규정하고, 그 고통을 끝내는 가장 확실한 방법으로 죽음을 선택할 권리를 이야기합니다.
우리의 삶에도 크고 작은 고통은 그림자처럼 따라옵니다. 질병의 아픔, 관계의 깨어짐, 예기치 못한 사고와 실패는 우리의 영혼을 잠식하고 때로는 모든 것을 포기하고 싶다는 절망감에 빠지게 합니다. 그럴 때 우리는 묻게 됩니다. ‘하나님은 어디에 계시는가? 왜 이 고통을 허락하시는가?’ 이 질문 앞에서 세상이 제시하는 답은 ‘고통 없는 삶’, 즉 고통의 ‘제거’입니다. 그러나 성경이 우리에게 보여주는 길은 사뭇 다릅니다.
1967년, 17세의 유망한 운동선수였던 조니 에릭슨 타다(Joni Eareckson Tada)는 다이빙 사고로 목 아래 전신이 마비되었습니다. 그녀는 깊은 절망 속에서 분노와 씨름하며 하나님께 수없이 부르짖었습니다. 죽음까지 생각했던 그녀는 기나긴 고통의 터널을 지나며, 자신의 깨어진 몸을 통해 일하시는 하나님의 놀라운 섭리를 발견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녀는 입에 붓을 물고 그림을 그렸고, 휠체어에 앉아 전 세계 장애인들을 위한 사역을 펼쳤습니다. 그녀는 자신의 삶을 통해 “하나님은 때로 우리의 삶을 산산조각 내셔서, 그 조각들로 더 아름다운 모자이크를 만드신다”고 고백했습니다. 그녀의 고통은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이자 더 깊은 소망으로 나아가는 통로가 되었습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고통이 없는 삶을 약속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고통 속에서 우리와 함께하시는 하나님을 보여줍니다. 가장 큰 고통의 자리인 십자가 위에서, 하나님은 인간의 모든 죄와 절망을 친히 짊어지셨습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의 소망은 고통의 부재(不在)에 있는 것이 아니라, 고통의 현존(現存) 속에서 우리와 함께하시는 임마누엘 하나님께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이렇게 고백합니다. “생각하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비교할 수 없도다” (로마서 8:18). 우리의 눈에는 지금의 고난이 전부인 것처럼 보일지라도, 믿음의 눈을 들면 그 너머에 있는 비교할 수 없는 영광을 보게 됩니다. 세상이 죽음에서 끝을 찾을 때, 우리는 고통 너머에 있는 부활의 아침을 바라봅니다. 혹 지금 고통의 깊은 밤을 지나고 계십니까? 그 어둠 속에서 당신의 손을 붙들고 함께 울어주시는 주님을 만나시길, 그리고 마침내 그 고통을 영광의 재료로 바꾸실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신뢰하며 다시 일어서시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우리의 삶에도 크고 작은 고통은 그림자처럼 따라옵니다. 질병의 아픔, 관계의 깨어짐, 예기치 못한 사고와 실패는 우리의 영혼을 잠식하고 때로는 모든 것을 포기하고 싶다는 절망감에 빠지게 합니다. 그럴 때 우리는 묻게 됩니다. ‘하나님은 어디에 계시는가? 왜 이 고통을 허락하시는가?’ 이 질문 앞에서 세상이 제시하는 답은 ‘고통 없는 삶’, 즉 고통의 ‘제거’입니다. 그러나 성경이 우리에게 보여주는 길은 사뭇 다릅니다.
1967년, 17세의 유망한 운동선수였던 조니 에릭슨 타다(Joni Eareckson Tada)는 다이빙 사고로 목 아래 전신이 마비되었습니다. 그녀는 깊은 절망 속에서 분노와 씨름하며 하나님께 수없이 부르짖었습니다. 죽음까지 생각했던 그녀는 기나긴 고통의 터널을 지나며, 자신의 깨어진 몸을 통해 일하시는 하나님의 놀라운 섭리를 발견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녀는 입에 붓을 물고 그림을 그렸고, 휠체어에 앉아 전 세계 장애인들을 위한 사역을 펼쳤습니다. 그녀는 자신의 삶을 통해 “하나님은 때로 우리의 삶을 산산조각 내셔서, 그 조각들로 더 아름다운 모자이크를 만드신다”고 고백했습니다. 그녀의 고통은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이자 더 깊은 소망으로 나아가는 통로가 되었습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고통이 없는 삶을 약속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고통 속에서 우리와 함께하시는 하나님을 보여줍니다. 가장 큰 고통의 자리인 십자가 위에서, 하나님은 인간의 모든 죄와 절망을 친히 짊어지셨습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의 소망은 고통의 부재(不在)에 있는 것이 아니라, 고통의 현존(現存) 속에서 우리와 함께하시는 임마누엘 하나님께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이렇게 고백합니다. “생각하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비교할 수 없도다” (로마서 8:18). 우리의 눈에는 지금의 고난이 전부인 것처럼 보일지라도, 믿음의 눈을 들면 그 너머에 있는 비교할 수 없는 영광을 보게 됩니다. 세상이 죽음에서 끝을 찾을 때, 우리는 고통 너머에 있는 부활의 아침을 바라봅니다. 혹 지금 고통의 깊은 밤을 지나고 계십니까? 그 어둠 속에서 당신의 손을 붙들고 함께 울어주시는 주님을 만나시길, 그리고 마침내 그 고통을 영광의 재료로 바꾸실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신뢰하며 다시 일어서시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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