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룩한 방파제’, 시대적 사명인가 시대착오적 저항인가
한국교회공보 기자
작성일 2026-07-25 0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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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대 국회 개원을 앞두고 ‘거룩한 방파제’라는 구호가 한국 교회와 사회의 수면 위로 떠올랐다. 일부 목회자와 시민단체가 연대하여 소위 ‘성혁명 입법’을 저지하겠다는 이 선언은, 교회의 사회적 역할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 이는 과연 시대의 어둠에 맞서는 예언자적 사명인가, 아니면 다원주의 사회의 흐름을 역행하는 시대착오적 저항인가.
이들이 ‘악법’으로 규정하는 법안들의 핵심에는 ‘성평등’의 이름으로 포장된 젠더 이데올로기가 자리하고 있다. 이는 단순히 소수자의 인권을 보호하는 차원을 넘어, 남성과 여성이라는 하나님의 창조 질서 자체를 해체하고 가정을 재정의하려는 시도라는 점에서 심각성을 가진다. 교회가 이에 맞서는 것은 특정 집단에 대한 혐오나 차별이 아니라, 성경이 증언하는 인간과 가정, 사회에 대한 근본적인 진리를 수호하려는 신학적 결단이다. 세상의 가치관이 하나님의 말씀을 침범할 때, 교회는 침묵할 수 없다.
교회의 이러한 저항을 비판하는 이들은 정교분리의 원칙을 내세우거나, 교회가 사회적 갈등을 조장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교회는 본질적으로 ‘세상 속의 하나님 나라’로서, 세상의 불의와 죄악에 대해 침묵하지 않도록 부름받았다. 소금은 짠맛을 잃으면 밖에 버려져 밟힐 뿐이고, 빛은 등경 아래 숨겨두면 아무 쓸모가 없다. 교회의 사회적 책임은 세상의 권력을 탐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세상이 하나님의 공의와 사랑의 원리에서 벗어나 파멸로 치닫지 않도록 막아서는 것이다.
나치 독일 시절, 디트리히 본회퍼와 고백교회는 히틀러 정권의 반유대주의와 아리안 조항에 맞서 싸웠다. 그들은 단순히 정치적 반대를 한 것이 아니었다. 국가가 교회의 머리 되신 그리스도의 자리를 찬탈하고,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유대인을 말살하려는 시도는 복음의 본질 자체를 파괴하는 행위였기 때문이다. 본회퍼는 “미친 운전자가 군중을 향해 차를 몰 때, 목사의 임무는 그 희생자들의 상처를 싸매주는 것뿐만 아니라, 그 차에 뛰어들어 운전대를 빼앗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는 방관자가 아닌 책임 있는 저항자로서의 교회 사명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거룩한 방파제’를 세우는 일은 고독하고 험난한 길이다. 세상으로부터 수많은 오해와 비난을 감수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이는 혐오를 위한 저항이 아니라, 다음 세대와 우리 사회를 죄의 거센 파도로부터 지키기 위한 사랑의 몸부림이다. 교회가 감당해야 할 예언자적 사명은 세상의 가치에 동화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세상을 변화시키는 것이다.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로마서 12:2). 지금 한국 교회는 이 말씀 앞에서 자신의 시대적 사명을 분별해야 할 때다.
이들이 ‘악법’으로 규정하는 법안들의 핵심에는 ‘성평등’의 이름으로 포장된 젠더 이데올로기가 자리하고 있다. 이는 단순히 소수자의 인권을 보호하는 차원을 넘어, 남성과 여성이라는 하나님의 창조 질서 자체를 해체하고 가정을 재정의하려는 시도라는 점에서 심각성을 가진다. 교회가 이에 맞서는 것은 특정 집단에 대한 혐오나 차별이 아니라, 성경이 증언하는 인간과 가정, 사회에 대한 근본적인 진리를 수호하려는 신학적 결단이다. 세상의 가치관이 하나님의 말씀을 침범할 때, 교회는 침묵할 수 없다.
교회의 이러한 저항을 비판하는 이들은 정교분리의 원칙을 내세우거나, 교회가 사회적 갈등을 조장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교회는 본질적으로 ‘세상 속의 하나님 나라’로서, 세상의 불의와 죄악에 대해 침묵하지 않도록 부름받았다. 소금은 짠맛을 잃으면 밖에 버려져 밟힐 뿐이고, 빛은 등경 아래 숨겨두면 아무 쓸모가 없다. 교회의 사회적 책임은 세상의 권력을 탐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세상이 하나님의 공의와 사랑의 원리에서 벗어나 파멸로 치닫지 않도록 막아서는 것이다.
나치 독일 시절, 디트리히 본회퍼와 고백교회는 히틀러 정권의 반유대주의와 아리안 조항에 맞서 싸웠다. 그들은 단순히 정치적 반대를 한 것이 아니었다. 국가가 교회의 머리 되신 그리스도의 자리를 찬탈하고,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유대인을 말살하려는 시도는 복음의 본질 자체를 파괴하는 행위였기 때문이다. 본회퍼는 “미친 운전자가 군중을 향해 차를 몰 때, 목사의 임무는 그 희생자들의 상처를 싸매주는 것뿐만 아니라, 그 차에 뛰어들어 운전대를 빼앗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는 방관자가 아닌 책임 있는 저항자로서의 교회 사명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거룩한 방파제’를 세우는 일은 고독하고 험난한 길이다. 세상으로부터 수많은 오해와 비난을 감수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이는 혐오를 위한 저항이 아니라, 다음 세대와 우리 사회를 죄의 거센 파도로부터 지키기 위한 사랑의 몸부림이다. 교회가 감당해야 할 예언자적 사명은 세상의 가치에 동화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세상을 변화시키는 것이다.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로마서 12:2). 지금 한국 교회는 이 말씀 앞에서 자신의 시대적 사명을 분별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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