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의 끝자락에서, 교회는 무엇을 말해야 하는가
한국교회공보 기자
작성일 2026-07-24 07:10
본문
인간의 수명이 의학 기술의 발달로 유례없이 연장되면서, 교회는 ‘어떻게 죽을 것인가’라는 실존적 질문에 답해야 할 시대적 과제를 안게 되었다. 최근 한국교회연합이 개최한 생명윤리 세미나는 이러한 시대적 요청에 대한 시의적절한 응답이었다. ‘연명의료 중단’과 ‘안락사’라는 첨예한 주제를 공론의 장으로 이끌어 낸 것은 그 자체로 의미가 크다.
우리는 먼저 용어의 엄밀한 구분을 통해 논의의 출발점을 바로잡아야 한다. 회생 가능성이 없는 환자에게 고통스러운 시간만을 연장하는 의학적 처치를 중단하는 ‘연명의료 중단’은, 생명을 인위적으로 단축시키는 ‘안락사’나 ‘의사 조력 자살’과는 본질적으로 다르다. 전자가 인간의 한계를 인정하고 죽음을 하나님의 섭리에 맡기는 행위라면, 후자는 인간이 생명의 주권자가 되려는 교만한 시도이다. 기독교 신앙은 어떤 경우에도 생명을 인위적으로 끊는 행위를 용납할 수 없다. 이는 창조주에 대한 명백한 도전이기 때문이다.
성경은 우리의 생명이 우연의 산물이 아니라, 하나님의 주권적인 계획 아래 있음을 분명히 선언한다. “내 형질이 이루어지기 전에 주의 눈이 보셨으며 나를 위하여 정한 날이 하루도 되기 전에 주의 책에 다 기록이 되었나이다” (시편 139:16). 우리의 삶은 시작부터 끝까지 그분의 손안에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생명의 길이를 스스로 결정할 권리가 없다.
그러나 이 절대적인 원칙을 현실에 적용하는 일은 결코 단순하지 않다. 여기서 우리는 나치 정권이라는 극단의 악 앞에서 고뇌했던 신학자 디트리히 본회퍼의 윤리적 통찰을 마주하게 된다. 본회퍼는 기독교 윤리가 추상적인 원칙의 나열이 아니라, ‘구체적인 상황 속에서 그리스도를 따르는 책임적 행동’이라고 역설했다. 그는 맹목적인 율법주의를 경계하며, 사랑에 기초한 자유로운 결단을 강조했다. 생명의 끝자락에 선 환자와 그 가족의 고통을 외면한 채, ‘생명 연장’이라는 교리적 원칙만을 기계적으로 강요하는 것은 본회퍼가 경계했던 바로 그 비인격적인 율법주의일 수 있다.
따라서 교회는 안락사와 같은 생명 경시 풍조에 대해서는 단호히 반대하되, 무의미한 연명의료로 고통받는 이들의 존엄한 죽음을 맞이할 권리에 대해서는 깊은 목회적 돌봄과 신학적 숙고를 제공해야 한다. 이는 생명을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죽음의 과정을 하나님의 손에 온전히 의탁하는 믿음의 결단이 될 수 있다. 교회는 성도들이 두려움 속에서가 아니라, 부활의 소망 안에서 삶의 마지막 순간을 평안히 준비하도록 돕는 지혜와 사랑을 갖추어야 한다. 생명의 시작과 끝을 주관하시는 하나님 앞에서, 우리는 겸손히 그분의 뜻을 구하며 가장 책임 있는 사랑의 길을 선택해야 할 것이다.
우리는 먼저 용어의 엄밀한 구분을 통해 논의의 출발점을 바로잡아야 한다. 회생 가능성이 없는 환자에게 고통스러운 시간만을 연장하는 의학적 처치를 중단하는 ‘연명의료 중단’은, 생명을 인위적으로 단축시키는 ‘안락사’나 ‘의사 조력 자살’과는 본질적으로 다르다. 전자가 인간의 한계를 인정하고 죽음을 하나님의 섭리에 맡기는 행위라면, 후자는 인간이 생명의 주권자가 되려는 교만한 시도이다. 기독교 신앙은 어떤 경우에도 생명을 인위적으로 끊는 행위를 용납할 수 없다. 이는 창조주에 대한 명백한 도전이기 때문이다.
성경은 우리의 생명이 우연의 산물이 아니라, 하나님의 주권적인 계획 아래 있음을 분명히 선언한다. “내 형질이 이루어지기 전에 주의 눈이 보셨으며 나를 위하여 정한 날이 하루도 되기 전에 주의 책에 다 기록이 되었나이다” (시편 139:16). 우리의 삶은 시작부터 끝까지 그분의 손안에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생명의 길이를 스스로 결정할 권리가 없다.
그러나 이 절대적인 원칙을 현실에 적용하는 일은 결코 단순하지 않다. 여기서 우리는 나치 정권이라는 극단의 악 앞에서 고뇌했던 신학자 디트리히 본회퍼의 윤리적 통찰을 마주하게 된다. 본회퍼는 기독교 윤리가 추상적인 원칙의 나열이 아니라, ‘구체적인 상황 속에서 그리스도를 따르는 책임적 행동’이라고 역설했다. 그는 맹목적인 율법주의를 경계하며, 사랑에 기초한 자유로운 결단을 강조했다. 생명의 끝자락에 선 환자와 그 가족의 고통을 외면한 채, ‘생명 연장’이라는 교리적 원칙만을 기계적으로 강요하는 것은 본회퍼가 경계했던 바로 그 비인격적인 율법주의일 수 있다.
따라서 교회는 안락사와 같은 생명 경시 풍조에 대해서는 단호히 반대하되, 무의미한 연명의료로 고통받는 이들의 존엄한 죽음을 맞이할 권리에 대해서는 깊은 목회적 돌봄과 신학적 숙고를 제공해야 한다. 이는 생명을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죽음의 과정을 하나님의 손에 온전히 의탁하는 믿음의 결단이 될 수 있다. 교회는 성도들이 두려움 속에서가 아니라, 부활의 소망 안에서 삶의 마지막 순간을 평안히 준비하도록 돕는 지혜와 사랑을 갖추어야 한다. 생명의 시작과 끝을 주관하시는 하나님 앞에서, 우리는 겸손히 그분의 뜻을 구하며 가장 책임 있는 사랑의 길을 선택해야 할 것이다.
기사 공유하기
추천 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