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계라는 가면 뒤에 숨은 ‘자기 의’, 진리를 상실한 시대의 비극
한국교회공보 기자
작성일 2026-06-08 0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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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권이 ‘자신만의 진실’을 주장하며 통계를 그 방패로 삼는 현상은 현대 사회가 직면한 진리 상실의 단면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이는 단순한 정치적 기만 기술의 발달이 아니라, 인간의 죄성이 얼마나 교묘하고 조직적으로 진리를 왜곡할 수 있는지를 드러내는 신학적 사건이다. 에덴동산에서부터 시작된 인간의 첫 번째 죄는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따먹음으로써 스스로 선악의 기준, 즉 진리의 판별자가 되려 한 교만이었다. 오늘날 통계라는 객관성의 가면을 쓴 ‘자기 진실’의 주장은, 바로 이 원죄의 현대적 발현이며 스스로의 의(義)를 세우려는 바리새적 자기기만의 극치다.
조지 오웰의 소설 『1984』는 이러한 현상의 종착점을 섬뜩하게 예고한다. 소설 속 전체주의 국가는 ‘2+2=5’라는 명백한 거짓을 진실로 강요하며 개인의 이성과 양심을 파괴한다. 언어를 통제하고 역사를 재단하여, 당이 선포하는 것만이 유일한 진리가 되는 세상을 그렸다. 이는 문학적 상상에 그치지 않는다. 오늘날 정치인들이 아전인수 격으로 통계를 해석하고 불리한 사실을 외면하며 자신들의 주장을 관철하는 모습은, 오웰이 경고했던 ‘뉴스피크(Newspeak)’의 망령을 현실로 소환하고 있다.
이러한 혼돈 속에서 기독교는 무엇을 진리라고 말해야 하는가? 성경이 말하는 진리는 데이터나 논리로 증명되는 명제들의 집합이 아니다. 그것은 인격이며, 생명 그 자체다. 요한복음 14장 6절에서 예수께서는 분명히 선포하셨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세상의 진리는 상대적이고 가변적이며, 권력과 이익에 따라 언제든 뒤바뀔 수 있는 모래성과 같다. 그러나 교회가 붙들어야 할 진리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신 예수 그리스도 한 분뿐이다. 따라서 교회의 사명은 세상의 거짓된 통계와 논리를 또 다른 통계와 논리로 반박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교회의 진정한 역할은 세상의 모든 거짓을 심판하고 무너뜨리는 유일한 진리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을 삶으로 증언하는 것이다. 교회가 이 진리의 기둥과 터(딤전 3:15)로서 굳건히 설 때, 비로소 ‘자신만의 진실’이라는 우상에 빠진 시대는 참된 빛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조지 오웰의 소설 『1984』는 이러한 현상의 종착점을 섬뜩하게 예고한다. 소설 속 전체주의 국가는 ‘2+2=5’라는 명백한 거짓을 진실로 강요하며 개인의 이성과 양심을 파괴한다. 언어를 통제하고 역사를 재단하여, 당이 선포하는 것만이 유일한 진리가 되는 세상을 그렸다. 이는 문학적 상상에 그치지 않는다. 오늘날 정치인들이 아전인수 격으로 통계를 해석하고 불리한 사실을 외면하며 자신들의 주장을 관철하는 모습은, 오웰이 경고했던 ‘뉴스피크(Newspeak)’의 망령을 현실로 소환하고 있다.
이러한 혼돈 속에서 기독교는 무엇을 진리라고 말해야 하는가? 성경이 말하는 진리는 데이터나 논리로 증명되는 명제들의 집합이 아니다. 그것은 인격이며, 생명 그 자체다. 요한복음 14장 6절에서 예수께서는 분명히 선포하셨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세상의 진리는 상대적이고 가변적이며, 권력과 이익에 따라 언제든 뒤바뀔 수 있는 모래성과 같다. 그러나 교회가 붙들어야 할 진리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신 예수 그리스도 한 분뿐이다. 따라서 교회의 사명은 세상의 거짓된 통계와 논리를 또 다른 통계와 논리로 반박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교회의 진정한 역할은 세상의 모든 거짓을 심판하고 무너뜨리는 유일한 진리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을 삶으로 증언하는 것이다. 교회가 이 진리의 기둥과 터(딤전 3:15)로서 굳건히 설 때, 비로소 ‘자신만의 진실’이라는 우상에 빠진 시대는 참된 빛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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