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엄한 인류’인가, ‘전적으로 부패한 인간’인가
한국교회공보 기자
작성일 2026-06-06 07:10
본문
로마 가톨릭 교황 레오 14세가 발표한 첫 회칙 ‘장엄한 인류(Magnifica Humanitas)’는 인공지능이라는 현대적 도전에 대한 신학적 응답이라는 점에서 큰 주목을 받고 있다. 회칙은 기술 발전 속에서 인간의 고유한 존엄성을 수호하려는 고귀한 의도를 담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개혁주의 신학의 관점에서 볼 때, 이 회칙의 제목과 그 기저에 흐르는 사상은 심각한 신학적 문제를 드러낸다. 그것은 바로 인간론, 즉 죄와 은혜에 대한 근본적인 이해의 차이다.
회칙의 제목 ‘장엄한 인류’는 타락 이후의 인간 본성에 대한 낙관적 견해를 전제한다. 이는 인간의 이성과 자유의지가 죄로 인해 완전히 부패한 것이 아니라 단지 상처 입고 약화되었을 뿐이며, 하나님의 은혜는 이러한 자연적 본성을 완성시킨다고 보는 로마 가톨릭의 전통적 신학에 뿌리를 두고 있다. 그러나 성경이 증언하는 인간의 실상은 이와 다르다. 사도 바울은 로마서에서 인간의 상태를 다음과 같이 단호하게 선언한다.
“기록된 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깨닫는 자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고 다 치우쳐 함께 무익하게 되고 선을 행하는 자는 없나니 하나도 없도다” (로마서 3:10-12)
이 말씀은 인간이 스스로의 힘으로는 하나님을 찾을 수도, 선을 행할 수도 없는 전적인 무능과 부패의 상태에 있음을 명백히 증거한다. 인간의 존엄성은 인간 자체의 내재적 ‘장엄함’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되었고 그리스도의 피로 구속받았다는 사실에 근거한다. 타락한 인간은 ‘장엄한 인류’가 아니라 하나님의 진노 아래 있는 ‘죄의 종’일 뿐이다.
이러한 신학적 논쟁은 고대 교회의 펠라기우스 논쟁을 떠올리게 한다. 펠라기우스는 인간이 자신의 자유의지로 선을 선택하고 율법을 지킬 수 있다고 주장하며 인간의 자율성과 능력을 강조했다. 이에 맞서 어거스틴은 원죄로 인해 전적으로 타락한 인간은 하나님의 불가항력적 은혜 없이는 결코 구원받을 수 없다고 역설했다. 교황의 회칙이 펠라기우스주의를 그대로 따르는 것은 아닐지라도, 그 인간 이해의 기저에는 인간의 능력에 대한 과도한 신뢰라는 유사한 흐름이 발견된다. 인공지능의 위협에 맞서 인간의 존엄성을 지키는 길은 인간의 ‘장엄함’을 긍정하는 데 있지 않다. 오히려 인간의 비참한 실상을 철저히 인정하고, 오직 우리를 새롭게 하시는 그리스도의 은혜와 능력을 선포하는 데 있다. 교회의 진정한 과제는 세상에 인본주의적 희망을 제시하는 것이 아니라, 죄인을 부르러 오신 그리스도의 복음을 증언하는 것이다.
회칙의 제목 ‘장엄한 인류’는 타락 이후의 인간 본성에 대한 낙관적 견해를 전제한다. 이는 인간의 이성과 자유의지가 죄로 인해 완전히 부패한 것이 아니라 단지 상처 입고 약화되었을 뿐이며, 하나님의 은혜는 이러한 자연적 본성을 완성시킨다고 보는 로마 가톨릭의 전통적 신학에 뿌리를 두고 있다. 그러나 성경이 증언하는 인간의 실상은 이와 다르다. 사도 바울은 로마서에서 인간의 상태를 다음과 같이 단호하게 선언한다.
“기록된 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깨닫는 자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고 다 치우쳐 함께 무익하게 되고 선을 행하는 자는 없나니 하나도 없도다” (로마서 3:10-12)
이 말씀은 인간이 스스로의 힘으로는 하나님을 찾을 수도, 선을 행할 수도 없는 전적인 무능과 부패의 상태에 있음을 명백히 증거한다. 인간의 존엄성은 인간 자체의 내재적 ‘장엄함’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되었고 그리스도의 피로 구속받았다는 사실에 근거한다. 타락한 인간은 ‘장엄한 인류’가 아니라 하나님의 진노 아래 있는 ‘죄의 종’일 뿐이다.
이러한 신학적 논쟁은 고대 교회의 펠라기우스 논쟁을 떠올리게 한다. 펠라기우스는 인간이 자신의 자유의지로 선을 선택하고 율법을 지킬 수 있다고 주장하며 인간의 자율성과 능력을 강조했다. 이에 맞서 어거스틴은 원죄로 인해 전적으로 타락한 인간은 하나님의 불가항력적 은혜 없이는 결코 구원받을 수 없다고 역설했다. 교황의 회칙이 펠라기우스주의를 그대로 따르는 것은 아닐지라도, 그 인간 이해의 기저에는 인간의 능력에 대한 과도한 신뢰라는 유사한 흐름이 발견된다. 인공지능의 위협에 맞서 인간의 존엄성을 지키는 길은 인간의 ‘장엄함’을 긍정하는 데 있지 않다. 오히려 인간의 비참한 실상을 철저히 인정하고, 오직 우리를 새롭게 하시는 그리스도의 은혜와 능력을 선포하는 데 있다. 교회의 진정한 과제는 세상에 인본주의적 희망을 제시하는 것이 아니라, 죄인을 부르러 오신 그리스도의 복음을 증언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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