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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별금지법, '관용'의 이름으로 진리를 억압하는가

한국교회공보 기자
작성일 2026-06-05 0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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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대 국회 개원과 함께 차별금지법 제정 움직임이 다시금 수면 위로 떠오르고 있다. 법의 명칭이 담고 있는 '차별 금지'라는 가치에 반대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모든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았기에 존엄하며, 부당한 차별로부터 보호받아야 한다는 것은 성경의 가르침과도 궤를 같이한다. 그러나 문제는 법안이 품고 있는 독소적 개념과 그것이 초래할 파괴적 결과에 있다.

논쟁의 핵심은 '성적 지향'과 '성별 정체성'을 차별금지 사유에 포함하는 문제다. 이는 단순히 개인의 권리를 보호하는 차원을 넘어, 성경이 명백히 죄라고 규정하는 동성애를 정상적인 것으로 인정하고, 나아가 비판하거나 반대할 신앙적 자유를 '차별'과 '혐오'로 규정하여 법적으로 처벌하려는 시도다. 이는 '관용'이라는 이름으로 진리를 억압하고, '평등'이라는 미명 아래 신앙의 자유라는 헌법적 가치를 침해하는 역차별을 낳을 수밖에 없다.

이러한 시도는 조지 오웰의 소설 『1984』에 등장하는 '신어(Newspeak)'를 연상시킨다. 소설 속 전체주의 국가는 '전쟁은 평화', '자유는 예속'과 같이 단어의 본래 의미를 전복시켜 대중의 사고를 통제한다. 마찬가지로, 차별금지법은 성경적 가치에 따른 분별과 비판을 '혐오'라는 단어로 낙인찍고, 창조 질서에 기반한 신앙 고백을 '차별'이라는 법적 처벌의 대상으로 전락시킨다. 이는 언어의 혼란을 통해 가치 체계를 전복시키려는 매우 위험한 시도이며, 한번 무너지면 회복하기 어려운 사회의 근간을 흔드는 일이다.

교회가 이 법안을 우려하는 것은 특정 집단에 대한 증오나 배제의 논리가 아니다. 오히려 진리에 대한 사랑과 사회 전체의 영적 건강성에 대한 깊은 책임감 때문이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진리를 통해 참된 자유를 누리게 하셨다. 요한복음 8장 32절은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고 선포한다. 만일 진리를 말하는 것 자체가 불법이 되는 사회가 온다면, 우리는 어디에서 참된 자유를 찾을 수 있겠는가.

따라서 교회와 성도들은 이 법안의 아름다운 이름 뒤에 숨겨진 위험한 본질을 직시해야 한다. 감정적 대응을 넘어, 법안의 각 조항이 개인의 신앙, 가정, 교육, 사회 전반에 미칠 영향을 냉철하게 분석하고 알려야 한다. 이는 단순히 교회의 권리를 지키는 싸움이 아니라, 다음 세대를 위해 진리가 선포될 수 있는 자유로운 대한민국을 지키는 영적 싸움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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