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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의 참된 유산, 건물이 아닌 말씀과 피에 있다

한국교회공보 기자
작성일 2026-08-22 07:10

본문

오늘날 한국 교회는 자신의 사회적 위상과 유산을 두고 다양한 목소리를 내고 있다. 기독교 근현대문화유산을 제도적으로 보호해야 한다는 주장은 정당한 권리 요구이며, 소외된 이웃을 섬기는 장학 사업은 교회의 아름다운 사회적 책무다. 그러나 우크라이나의 전쟁 속에서 445년 전 번역된 성경을 붙들고 영적 각성을 모색하는 모습과, 벨라루스에서 신앙의 자유를 부르짖다 형사 기소된 성도들의 소식 앞에서, 우리는 교회의 본질적인 유산이 무엇인지 다시금 묻지 않을 수 없다. 교회의 진정한 힘은 과연 어디에서 나오는가.

중세 암흑기, 알프스 산맥의 험준한 계곡에 숨어 살았던 발도파(Waldensians) 신도들을 기억한다. 그들은 로마 가톨릭의 극심한 박해 속에서 웅장한 성전도, 화려한 제의도 가질 수 없었다. 그들의 유산은 돌로 지은 건물이 아니라, 동굴에 숨어 필사하고 암송했던 하나님의 말씀 그 자체였다. 그들은 자녀들에게 성경을 가르쳤고, 유럽 전역에 복음을 전하는 순회 전도자들을 파송했다. 세상의 눈으로 볼 때 그들은 보잘것없는 소수였으나, 그들의 손에 들린 말씀과 순교의 피는 종교개혁의 새벽을 여는 거룩한 불씨가 되었다. 이것이 교회의 참된 유산이다.

오늘날 우리가 보존하고 계승해야 할 유산의 핵심도 바로 여기에 있다. 기독교 문화유산의 제도화는 필요하지만, 그것이 교회의 본질이 될 수는 없다. 교회의 영광은 정부 보조금의 액수나 문화재 등록 건수로 측정되지 않는다. 오히려 전쟁의 포화 속에서도 오스트로흐 성경을 통해 민족의 정체성을 확인하려는 우크라이나 성도들의 영적 투쟁과, 독재의 압제 아래서도 복음의 자유를 위해 고난받는 벨라루스 형제들의 신앙이야말로 교회가 세상에 보여주어야 할 살아있는 유산이다.

교회의 영향력은 세상을 지배하려는 ‘통치 신학’의 오만함에서 나오지 않는다. 그것은 세상의 소금이 되어 자신을 녹이고, 빛이 되어 어둠을 밝히는 자기희생적 사랑에서 발현된다. 한국 교회는 이제 시선을 밖으로 돌려, 건물의 영광이 아닌 십자가의 영광을 다시 바라보아야 한다. 우리의 진정한 시민권이 어디에 있는지를 기억해야 한다.

“그러나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는지라 거기로부터 구원하는 자 곧 주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리노니 그는 만물을 자기에게 복종하게 하실 수 있는 자의 역사로 우리의 낮은 몸을 자기 영광의 몸의 형체와 같이 변하게 하시리라” (빌립보서 3: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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