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식을 넘어 본질로, 교회의 길을 묻다
한국교회공보 기자
작성일 2026-08-20 07:10
본문
시대의 흐름이 거대한 강물처럼 교회의 문턱을 넘나드는 오늘, 우리는 한국 교회의 현주소를 목도한다. 교단 총회의 선거는 절차적 정당성이라는 좁은 길목에서 공방을 거듭하고, 성도들의 신앙은 깊은 헌신보다 가벼운 소비를 지향하는 ‘저강도’의 유혹에 흔들린다. 세상은 생명의 존엄이라는 근원적 질문 앞에서 조력 사망을 법제화하며 스스로 답을 찾으려 하고, 한편에서는 거대한 성모상을 세우며 신앙의 가시적 증거를 갈망한다. 이 모든 현상은 하나의 질문으로 수렴된다. 한국 교회는 지금 무엇을 붙들고 있는가? 형식인가, 본질인가?
역사는 우리에게 준엄한 교훈을 남겼다. 중세 시대, 유럽 전역에는 하늘을 찌를 듯한 고딕 양식의 대성당들이 세워졌다. 그 웅장한 석조 건물과 눈부신 스테인드글라스는 당대 신앙의 위대한 기념비였음에 틀림없다. 그러나 그 화려한 형식의 이면에는 라틴어 성경에 갇혀 말씀의 본질로부터 소외된 평신도들의 영적 갈증이 있었다. 교회는 거대한 건축물이라는 형식을 소유했지만, 복음의 생명력이라는 본질을 점차 잃어가고 있었다. 결국 종교개혁의 불길은 바로 그 지점에서 타올랐다. 개혁자들은 교회의 본질이 건물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이 올바로 선포되고 성례가 정당하게 집행되는 성도의 교제’에 있음을 재확인시켰다.
오늘날 한국 교회가 마주한 위기는 중세의 그것과 다르지 않다. 총회장 후보의 자격 요건인 ‘21당회’는 교단의 헌법과 질서를 지키기 위한 중요한 형식이다. 그러나 이 형식을 둘러싼 논쟁이 교회의 연합과 거룩이라는 본질을 압도한다면, 우리는 길을 잃고 마는 것이다. 신앙을 개인의 취향에 맞게 조립하는 ‘저강도 종교’ 현상은 교회가 성도의 삶을 변화시키는 복음의 능력을 상실했을 때 나타나는 필연적 결과다. 생명의 주관자이신 하나님을 떠난 세상이 죽음을 선택할 권리를 논하는 동안, 교회는 생명의 참된 의미와 소망을 선포하는 본질적 사명을 감당하고 있는가 자문해야 한다.
이제 한국 교회는 외적인 성장과 절차적 정당성, 가시적인 종교 행위라는 익숙한 형식의 옷을 벗고, 십자가 복음이라는 본질로 돌아가야 한다. 우리의 다툼과 논쟁이 세상을 향한 증언이 되고, 우리의 예배가 삶을 변화시키는 능력이 되며, 우리의 신앙이 시대의 아픔에 답하는 소망이 되어야 한다. 주님께서 라오디게아 교회를 향해 던지셨던 말씀을 기억해야 한다. “네가 말하기를 나는 부자라 부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 하나 네 곤고한 것과 가련한 것과 가난한 것과 눈 먼 것과 벌거벗은 것을 알지 못하는도다” (요한계시록 3:17). 한국 교회가 다시금 주님 앞에서 영적인 눈을 떠 자신의 실상을 직시하고, 세상의 소금과 빛이라는 본질적 사명을 회복하기를 간절히 촉구한다.
역사는 우리에게 준엄한 교훈을 남겼다. 중세 시대, 유럽 전역에는 하늘을 찌를 듯한 고딕 양식의 대성당들이 세워졌다. 그 웅장한 석조 건물과 눈부신 스테인드글라스는 당대 신앙의 위대한 기념비였음에 틀림없다. 그러나 그 화려한 형식의 이면에는 라틴어 성경에 갇혀 말씀의 본질로부터 소외된 평신도들의 영적 갈증이 있었다. 교회는 거대한 건축물이라는 형식을 소유했지만, 복음의 생명력이라는 본질을 점차 잃어가고 있었다. 결국 종교개혁의 불길은 바로 그 지점에서 타올랐다. 개혁자들은 교회의 본질이 건물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이 올바로 선포되고 성례가 정당하게 집행되는 성도의 교제’에 있음을 재확인시켰다.
오늘날 한국 교회가 마주한 위기는 중세의 그것과 다르지 않다. 총회장 후보의 자격 요건인 ‘21당회’는 교단의 헌법과 질서를 지키기 위한 중요한 형식이다. 그러나 이 형식을 둘러싼 논쟁이 교회의 연합과 거룩이라는 본질을 압도한다면, 우리는 길을 잃고 마는 것이다. 신앙을 개인의 취향에 맞게 조립하는 ‘저강도 종교’ 현상은 교회가 성도의 삶을 변화시키는 복음의 능력을 상실했을 때 나타나는 필연적 결과다. 생명의 주관자이신 하나님을 떠난 세상이 죽음을 선택할 권리를 논하는 동안, 교회는 생명의 참된 의미와 소망을 선포하는 본질적 사명을 감당하고 있는가 자문해야 한다.
이제 한국 교회는 외적인 성장과 절차적 정당성, 가시적인 종교 행위라는 익숙한 형식의 옷을 벗고, 십자가 복음이라는 본질로 돌아가야 한다. 우리의 다툼과 논쟁이 세상을 향한 증언이 되고, 우리의 예배가 삶을 변화시키는 능력이 되며, 우리의 신앙이 시대의 아픔에 답하는 소망이 되어야 한다. 주님께서 라오디게아 교회를 향해 던지셨던 말씀을 기억해야 한다. “네가 말하기를 나는 부자라 부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 하나 네 곤고한 것과 가련한 것과 가난한 것과 눈 먼 것과 벌거벗은 것을 알지 못하는도다” (요한계시록 3:17). 한국 교회가 다시금 주님 앞에서 영적인 눈을 떠 자신의 실상을 직시하고, 세상의 소금과 빛이라는 본질적 사명을 회복하기를 간절히 촉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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