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려움의 골짜기를 건너는 교회, 다시금 요청되는 영적 담대함
한국교회공보 기자
작성일 2026-08-17 07:10
본문
세속주의의 거센 파고와 반기독교적 정서의 확산 속에서 한국 교회는 마치 거인 골리앗 앞에 선 이스라엘 군대처럼 위축된 모습을 보이고 있다. 한때 세상을 향해 담대히 복음을 선포하던 야성은 희미해지고, 스스로를 변호하고 방어하는 데 급급한 형국이다. 이는 마치 압도적인 규모의 대학 캠퍼스와 수많은 인재들 앞에서 기가 죽어 고향으로 돌아갔던 청년 래리 버드의 모습과도 같다. 그러나 그가 위대한 선수로 거듭날 수 있었던 것은 두려움을 인정하고 다시 코트로 돌아올 용기를 냈기 때문이다. 지금 한국 교회에 필요한 것은 바로 이러한 본질적인 용기, 즉 세상의 평가나 비난이 아닌 오직 하나님 한 분만을 두려워하는 영적 담대함이다.
1521년, 신성로마제국 황제 카를 5세가 주재한 보름스 의회에 한 사제가 섰다. 마르틴 루터였다. 그의 모든 저술을 철회하라는 서슬 퍼런 요구 앞에서 그의 인간적인 고뇌는 깊었을 것이다. 그러나 하루의 숙고 끝에 그가 내놓은 대답은 교회의 역사를 바꾸었다. “나의 양심은 하나님의 말씀에 사로잡혔습니다. 나는 아무것도 철회할 수 없고, 철회하지도 않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양심에 반하여 행동하는 것은 안전하지도, 옳은 일도 아니기 때문입니다. 내가 여기 섰나이다. 나는 달리 어찌할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이여, 나를 도우소서. 아멘.” 이는 자신의 지혜나 힘을 의지한 만용이 아니었다. 세상의 모든 권력 앞에서 오직 기록된 말씀의 권위에만 자신을 세운 믿음의 결단이었다.
오늘날 한국 교회는 루터가 섰던 그 결단의 자리에 서 있다. 교회를 향한 세상의 요구는 끊임없이 성경의 진리를 타협하고 변개하라고 압박한다. 이 거대한 압력 앞에서 우리가 돌아갈 곳은 세상과의 적당한 타협이나 우리 자신의 무력함을 한탄하는 골방이 아니다. 교회가 돌아가야 할 곳은 오직 하나님의 말씀이 선포되는 코트이며, 붙잡아야 할 것은 세상이 아닌 하나님의 능력이다. 교회의 본질은 방어와 수성이 아니라 진리를 향한 거룩한 전진에 있다. 두려움의 골짜기를 건너 약속의 땅으로 나아갔던 여호수아와 갈렙의 담대함으로, 다시 한번 복음의 깃발을 들고 세상 속으로 행진해야 할 때이다.
1521년, 신성로마제국 황제 카를 5세가 주재한 보름스 의회에 한 사제가 섰다. 마르틴 루터였다. 그의 모든 저술을 철회하라는 서슬 퍼런 요구 앞에서 그의 인간적인 고뇌는 깊었을 것이다. 그러나 하루의 숙고 끝에 그가 내놓은 대답은 교회의 역사를 바꾸었다. “나의 양심은 하나님의 말씀에 사로잡혔습니다. 나는 아무것도 철회할 수 없고, 철회하지도 않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양심에 반하여 행동하는 것은 안전하지도, 옳은 일도 아니기 때문입니다. 내가 여기 섰나이다. 나는 달리 어찌할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이여, 나를 도우소서. 아멘.” 이는 자신의 지혜나 힘을 의지한 만용이 아니었다. 세상의 모든 권력 앞에서 오직 기록된 말씀의 권위에만 자신을 세운 믿음의 결단이었다.
오늘날 한국 교회는 루터가 섰던 그 결단의 자리에 서 있다. 교회를 향한 세상의 요구는 끊임없이 성경의 진리를 타협하고 변개하라고 압박한다. 이 거대한 압력 앞에서 우리가 돌아갈 곳은 세상과의 적당한 타협이나 우리 자신의 무력함을 한탄하는 골방이 아니다. 교회가 돌아가야 할 곳은 오직 하나님의 말씀이 선포되는 코트이며, 붙잡아야 할 것은 세상이 아닌 하나님의 능력이다. 교회의 본질은 방어와 수성이 아니라 진리를 향한 거룩한 전진에 있다. 두려움의 골짜기를 건너 약속의 땅으로 나아갔던 여호수아와 갈렙의 담대함으로, 다시 한번 복음의 깃발을 들고 세상 속으로 행진해야 할 때이다.
기사 공유하기
추천 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