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 문턱을 넘어 성전의 뜰을 넓힐 때
한국교회공보 기자
작성일 2026-07-27 07:10
본문
교회의 문턱은 어떠해야 하는가. 오늘날 한국 교회는 세상과의 소통, 다음 세대와의 연결을 외치며 다양한 방식의 문턱 낮추기를 시도하고 있다. 그러나 정작 우리가 낮추고 있는지 돌아보아야 할 문턱은 따로 있다. 바로 교회 공동체 안으로 들어오는 형제자매들을 향한 보이지 않는 문턱이다.
마크 아놀드의 제안은 단순한 시설 개선의 문제를 넘어선다. 귀마개와 손 장난감, 혹은 포용성 담당관의 임명은 교회가 누구를 위한 공동체이며, 무엇을 향해 나아가야 하는지를 묻는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 교회는 본질적으로 그리스도의 몸이다. 몸의 한 지체가 겪는 고통은 온몸의 고통이며, 약하게 보이는 지체가 실은 더욱 요긴하다는 것이 성경의 가르침이다. 장애 아동과 그 가족이 교회 안에서 소외감을 느낀다면, 그것은 몸의 일부가 마비되거나 괴사하는 것과 같은 영적 위기다.
18세기 영국의 노예무역상이었던 존 뉴턴(John Newton)은 훗날 깊이 회심하여 목회자이자 찬송가 '나 같은 죄인 살리신(Amazing Grace)'의 작사가가 되었다. 그가 과거 상품처럼 취급했던 흑인 노예들의 인권을 위해 싸우는 노예제 폐지론자로 변모한 것은, 모든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받은 동등한 존재임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의 신앙은 더 이상 자신과 같이 유창하고 건강한 이들만을 위한 것이 아니었다. 가장 비참하고 연약한 자들을 끌어안는 것이야말로 그가 체험한 '놀라운 은혜'의 본질이었다. 한국 교회는 존 뉴턴의 회심과 같이, 공동체 안의 가장 연약한 이들을 바라보는 시선의 전환을 경험해야 한다.
바울은 고린도 교회에 보내는 편지에서 이렇게 선언했다. “눈이 손더러 내가 너를 쓸 데가 없다 하거나 또한 머리가 발더러 내가 너를 쓸 데가 없다 하지 못하리라 그뿐 아니라 더 약하게 보이는 몸의 지체가 도리어 요긴하고 우리가 몸의 덜 귀히 여기는 그것들을 더욱 귀한 것들로 입혀 주며 우리의 아름답지 못한 지체는 더욱 아름다운 것을 얻느니라”(고린도전서 12:21-23). 한국 교회는 이제 교회의 양적 성장을 위한 문턱 낮추기를 넘어, 모든 지체를 그리스도의 온전한 몸으로 세우기 위한 성전의 뜰을 넓혀야 할 때다. 그 뜰을 넓히는 일은, 가장 작고 연약한 지체를 위한 구체적인 배려에서부터 시작된다.
마크 아놀드의 제안은 단순한 시설 개선의 문제를 넘어선다. 귀마개와 손 장난감, 혹은 포용성 담당관의 임명은 교회가 누구를 위한 공동체이며, 무엇을 향해 나아가야 하는지를 묻는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 교회는 본질적으로 그리스도의 몸이다. 몸의 한 지체가 겪는 고통은 온몸의 고통이며, 약하게 보이는 지체가 실은 더욱 요긴하다는 것이 성경의 가르침이다. 장애 아동과 그 가족이 교회 안에서 소외감을 느낀다면, 그것은 몸의 일부가 마비되거나 괴사하는 것과 같은 영적 위기다.
18세기 영국의 노예무역상이었던 존 뉴턴(John Newton)은 훗날 깊이 회심하여 목회자이자 찬송가 '나 같은 죄인 살리신(Amazing Grace)'의 작사가가 되었다. 그가 과거 상품처럼 취급했던 흑인 노예들의 인권을 위해 싸우는 노예제 폐지론자로 변모한 것은, 모든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받은 동등한 존재임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의 신앙은 더 이상 자신과 같이 유창하고 건강한 이들만을 위한 것이 아니었다. 가장 비참하고 연약한 자들을 끌어안는 것이야말로 그가 체험한 '놀라운 은혜'의 본질이었다. 한국 교회는 존 뉴턴의 회심과 같이, 공동체 안의 가장 연약한 이들을 바라보는 시선의 전환을 경험해야 한다.
바울은 고린도 교회에 보내는 편지에서 이렇게 선언했다. “눈이 손더러 내가 너를 쓸 데가 없다 하거나 또한 머리가 발더러 내가 너를 쓸 데가 없다 하지 못하리라 그뿐 아니라 더 약하게 보이는 몸의 지체가 도리어 요긴하고 우리가 몸의 덜 귀히 여기는 그것들을 더욱 귀한 것들로 입혀 주며 우리의 아름답지 못한 지체는 더욱 아름다운 것을 얻느니라”(고린도전서 12:21-23). 한국 교회는 이제 교회의 양적 성장을 위한 문턱 낮추기를 넘어, 모든 지체를 그리스도의 온전한 몸으로 세우기 위한 성전의 뜰을 넓혀야 할 때다. 그 뜰을 넓히는 일은, 가장 작고 연약한 지체를 위한 구체적인 배려에서부터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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