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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너진 바벨탑 앞에서, 참된 위대함을 묻다

한국교회공보 기자
작성일 2026-06-16 0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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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 쌓아 올린 제도의 허망함과 권력의 무상함이 여실히 드러난 하루다. 21세기 대한민국에서 국민의 주권을 담보하는 투표용지가 부족하여 참정권이 훼손되는 사태가 벌어졌다. 이는 단순한 행정적 실수를 넘어, 우리가 굳건하다고 믿었던 민주주의라는 시스템의 근간이 얼마나 취약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통렬한 자화상이다. 동시에, 역사를 풍미했던 거대 제국들이 힘을 숭상하다 결국 자멸의 길을 걸었다는 제프 파운틴의 지적은, 국가와 사회가 추구하는 ‘위대함’의 기준이 무엇인지 근본적으로 묻게 한다.

세상은 더 높은 힘, 더 강한 군사력, 더 거대한 경제력을 위대함의 척도로 삼는다. 그러나 성경이 증언하고 역사가 증명하는 바는 명확하다. 힘에 대한 숭배는 결국 교만과 파멸을 낳는 바벨탑 쌓기에 불과하다. 이러한 시대의 흐름 속에서 한국 교회는 어디를 바라보며 무엇을 추구해야 하는가. 교회의 위대함은 세상의 기준을 따르는 데 있지 않다. 거대한 예배당의 규모나 교인의 수, 정치적 영향력이 교회의 본질적 위대함을 보증하지 않는다.

영국의 정치가 윌리엄 윌버포스의 생애는 우리에게 참된 위대함의 길을 제시한다. 그는 당대 최강대국이었던 대영제국의 심장부에서 막강한 권력을 손에 쥘 수 있었던 인물이다. 그러나 그는 그 힘을 자신의 영달이 아닌, 하나님의 공의를 위해 사용했다. 20년이 넘는 세월 동안 멸시와 조롱을 견디며 노예무역 폐지를 위해 싸웠고, 마침내 하나님의 뜻을 관철시켰다. 그의 위대함은 제국을 확장한 정복자의 것이 아니라, 가장 낮은 곳의 신음하는 이들을 섬긴 종의 것이었다. 그는 힘을 가졌으나 섬김의 도구로 사용했다.

오늘의 소식들은 교회가 나아갈 길을 명확히 보여준다. 월드컵 경기장에서 승자와 패자가 함께 무릎 꿇고 기도하는 모습은 세상의 경쟁 논리를 뛰어넘는 하나님 나라의 연합을 증거한다. 30년간 묵묵히 동유럽 선교에 헌신하다 소천한 안네-마리 쿨 교수의 삶은 이름 없이 빛도 없이 섬기는 삶이야말로 가장 영광스러운 것임을 웅변한다. 교회를 세우는 힘이 화려한 프로그램이 아닌, 우직하게 선포되는 성경적 설교에 있다는 피터 미드의 통찰은 우리가 돌아가야 할 본질이 무엇인지 일깨운다.

그러므로 한국 교회는 이제 세상의 바벨탑을 쌓으려는 미망에서 벗어나야 한다. 무너지는 세상의 시스템을 보며 함께 탄식하되, 그 대안이 되시는 그리스도의 길을 걸어야 한다. 교회의 참된 위대함은 힘이 아닌 정의에, 지배가 아닌 섬김에, 분열이 아닌 그리스도 안에서의 하나 됨에 있다. 이것이 이 시대의 폐허 속에서 교회가 다시 세워야 할 유일하고도 영원한 기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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