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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호 없는 길, 그러나 위대한 완주

한국교회공보 기자
작성일 2026-06-15 07:10

본문

현대 교회는 속도와 성과라는 우상에 깊이 매료되어 있다. 더 빨리, 더 높이, 더 많이 모이는 것을 성공의 척도로 삼는 시대의 조류 속에서, 신앙의 본질은 종종 길을 잃고 만다. 그러나 오늘 우리가 마주한 1976년 몬트리올 올림픽의 마라토너 찰스 올멘의 이야기는, 신앙의 여정이 화려한 단거리 경주가 아니라 묵묵한 장거리 경주임을 웅변한다. 관중 대부분이 떠나버린 텅 빈 경기장, 1등과 한 시간이 넘는 격차. 그의 완주는 세상의 눈으로 볼 때 명백한 실패였다. 그러나 그는 포기하지 않았고, 자신에게 주어진 길을 끝까지 달려냈다. 이것이 바로 성도의 견인(堅忍)이다.

영국의 정치가 윌리엄 윌버포스는 노예제 폐지라는, 당시로서는 불가능해 보였던 싸움을 평생에 걸쳐 감당했다. 수많은 정치적 공격과 비난, 동료들의 배신과 대중의 무관심 속에서 그는 수십 년간 외로운 싸움을 이어갔다. 그의 투쟁은 즉각적인 승리로 이어지지 않았다. 오히려 기나긴 인내와 기다림의 연속이었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의 공의에 대한 확고한 믿음을 가지고 그 길을 걸었고, 마침내 그의 생이 다하기 직전 영국 의회는 노예제 폐지 법안을 통과시켰다. 윌버포스의 삶은 텅 빈 경기장을 달린 올멘의 경주와 다르지 않다. 세상의 박수갈채가 아니라 하나님의 인정을 구하며, 눈앞의 성과가 아니라 영원한 가치를 향해 묵묵히 전진하는 것, 이것이 바로 개혁주의 신앙이 가르치는 성도의 삶이다.

오늘날 한국 교회는 비범한 체험과 기적적인 사건에 열광하며, 신앙의 깊이를 영적 현상의 강도로 측정하려는 유혹에 빠져 있다. 그러나 성경이 가르치는 참된 영성은 요란한 소리가 아니라 고요한 순종 속에서, 특별한 은사가 아니라 일상의 성실함 속에서 드러난다. 데살로니가전서가 권면하듯, 우리는 모든 것을 분별하며 선한 것을 굳게 붙잡아야 한다. 신앙의 여정은 찰스 올멘처럼 때로 홀로 달리는 길이며, 윌버포스처럼 수십 년간 열매 없이 씨를 뿌리는 시간일 수 있다. 한국 교회는 이제 속도의 신화를 내려놓고, 인내의 가치를 회복해야 한다. 환호 없는 길이라 할지라도, 주께서 명하신 길을 끝까지 완주하는 것보다 더 위대한 승리는 없기 때문이다. 그 길의 끝에서 우리를 기다리시는 분은 세상이 아니라, 만유의 주재이신 하나님이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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