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 다시 광장으로: 시대의 물음에 답하는 공적 신앙을 향하여
한국교회공보 기자
작성일 2026-08-31 07:10
본문
강릉 지역 목회자들이 교파를 넘어 지역 사회를 섬기기 위해 연합했다는 소식은 가뭄의 단비와 같다. ‘전교회가 전복음을 전시민에게’라는 구호 아래, 저출산과 생명존중 등 사회적 과제를 끌어안으려는 시도는 오늘날 한국 교회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명확히 제시한다. 이는 교회가 더 이상 스스로의 울타리 안에 갇힌 게토(ghetto)가 아니라, 세상의 빛과 소금으로서 공적 책임을 다하는 신앙 공동체로 거듭나야 함을 의미한다.
역사는 신앙이 개인의 경건에만 머물지 않고 사회 변혁의 동력이 되었음을 증언한다. 18세기 말 영국, 산업혁명의 그늘 아래 사회는 신음하고 있었다. 이때 윌리엄 윌버포스를 중심으로 한 ‘클래펌 공동체(Clapham Sect)’는 복음주의 신앙을 바탕으로 노예제 폐지라는, 당시로서는 불가능해 보였던 과업에 뛰어들었다. 그들은 매주 모여 기도하고 성경을 연구했을 뿐 아니라, 그 신앙을 가지고 의회로, 거리로, 공장으로 나아가 30년이 넘는 끈질긴 투쟁 끝에 마침내 노예무역 폐지를 이뤄냈다. 그들의 신앙은 사적인 영역에 국한되지 않고, 하나님의 공의가 사회 구조 속에 구현되도록 하는 공적인 힘으로 발현되었다.
오늘날 한국 사회는 강릉시가 마주한 문제들을 포함하여 수많은 신음과 과제들로 가득하다. 이념 갈등, 경제적 불평등, 정신적 공허함이 만연한 이 시대에 교회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그저 더 많은 사람을 교회 안으로 불러 모으는 것에 만족해서는 안 된다. 교회는 다시 광장으로 나아가야 한다. 사회의 아픔에 공감하고, 성경적 가치에 기반한 대안을 제시하며,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이웃을 섬기는 공적 신앙의 모습을 회복해야 한다. 강릉성시화운동이 그 거룩한 첫걸음이 되기를 소망하며, 전국 교회가 이 시대의 물음에 응답하는 공적 교회의 사명을 감당하기를 촉구한다.
역사는 신앙이 개인의 경건에만 머물지 않고 사회 변혁의 동력이 되었음을 증언한다. 18세기 말 영국, 산업혁명의 그늘 아래 사회는 신음하고 있었다. 이때 윌리엄 윌버포스를 중심으로 한 ‘클래펌 공동체(Clapham Sect)’는 복음주의 신앙을 바탕으로 노예제 폐지라는, 당시로서는 불가능해 보였던 과업에 뛰어들었다. 그들은 매주 모여 기도하고 성경을 연구했을 뿐 아니라, 그 신앙을 가지고 의회로, 거리로, 공장으로 나아가 30년이 넘는 끈질긴 투쟁 끝에 마침내 노예무역 폐지를 이뤄냈다. 그들의 신앙은 사적인 영역에 국한되지 않고, 하나님의 공의가 사회 구조 속에 구현되도록 하는 공적인 힘으로 발현되었다.
오늘날 한국 사회는 강릉시가 마주한 문제들을 포함하여 수많은 신음과 과제들로 가득하다. 이념 갈등, 경제적 불평등, 정신적 공허함이 만연한 이 시대에 교회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그저 더 많은 사람을 교회 안으로 불러 모으는 것에 만족해서는 안 된다. 교회는 다시 광장으로 나아가야 한다. 사회의 아픔에 공감하고, 성경적 가치에 기반한 대안을 제시하며,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이웃을 섬기는 공적 신앙의 모습을 회복해야 한다. 강릉성시화운동이 그 거룩한 첫걸음이 되기를 소망하며, 전국 교회가 이 시대의 물음에 응답하는 공적 교회의 사명을 감당하기를 촉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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