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호성의 시대, 선명한 신앙고백을 요구하다
한국교회공보 기자
작성일 2026-06-25 07:10
본문
시대정신은 안개와 같다. 소리 없이 스며들어 모든 것의 경계를 허물고 방향 감각을 앗아간다. 오늘 한국 사회와 교회가 마주한 현실이 그러하다. 정부는 ‘종교지원정책은 없다’는 모호한 답변으로 책임을 회피하고, 복음주의 진영과 로마 가톨릭의 경계는 희미해지고 있으며, 교회 안에서는 기독교의 본질을 위협하는 혼합주의가 독버섯처럼 자라나고 있다. 이 모든 현상의 기저에는 ‘모호성’이라는 시대의 질병이 깊이 자리하고 있다.
진리의 선명성을 잃어버린 시대는 본질을 외면하고 현상에 집착한다. 정부 종무실의 답변은 단순히 행정적 미숙함이 아니다. 이는 종교, 특히 기독교를 한국 사회의 중요한 파트너로 인정하지 않으려는, 혹은 그 가치를 애써 축소하려는 시대적 분위기를 반영한다. 교회 역시 이러한 흐름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절대 진리를 말하기보다 대중의 귀에 듣기 좋은 ‘영성’과 ‘체험’을 설파하며 스스로 복음의 날을 무디게 만들고 있다. 스페인 교회의 사례처럼, 요가와 프리메이슨 같은 이질적 사상이 기독교의 이름으로 포장되어 강단에 스며드는 것은 교회가 진리의 파수꾼이라는 정체성을 망각한 결과다.
역사는 우리에게 준엄한 교훈을 남긴다. 1521년, 신성로마제국 황제 카를 5세 앞에 선 마르틴 루터는 자신의 모든 저술을 철회하라는 요구에 직면했다. 그의 앞에는 거대한 권력과 회유, 그리고 죽음의 위협이 놓여 있었다. 시대는 그에게 타협과 모호함의 길을 강요했다. 그러나 루터는 “여기 내가 서나이다. 나는 달리 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 나를 도우소서(Hier stehe ich. Ich kann nicht anders. Gott helfe mir)”라고 외치며 자신의 신앙을 선명하게 고백했다. 그의 고백은 중세의 짙은 안개를 걷어내는 한 줄기 빛이었으며, 종교개혁의 위대한 서막을 열었다. 그는 모호함의 시대에 가장 선명한 진리의 언어로 응답했던 것이다.
오늘 한국 교회에 필요한 것은 바로 이 ‘루터의 고백’이다. 세상과의 적당한 타협이나 시대정신에 편승하는 유연함이 아니라, 오직 성경 위에 굳건히 서서 복음의 진리를 명료하게 선포하는 용기다. 네덜란드의 젊은이들이 신앙 안에서 방향과 안정을 찾고 있다는 소식은 우리에게 희망을 준다. 그들이 찾는 것은 세련된 프로그램이나 감각적 유희가 아니라, 흔들리지 않는 진리의 반석이다. 교회는 이들의 영적 갈증에 혼탁한 물이 아닌 생명의 샘물로 답해야 한다.
에베소서 4장 14절에서 15절은 이렇게 말씀한다. “이는 우리가 이제부터 어린 아이가 되지 아니하여 사람의 속임수와 간사한 유혹에 빠져 온갖 교훈의 풍조에 밀려 요동하지 않게 하려 함이라 오직 사랑 안에서 참된 것을 하여 범사에 그에게까지 자랄지라 그는 머리니 곧 그리스도라.” 교회가 다시 한번 진리의 허리띠를 동여매고, 세상의 모든 모호한 가르침 앞에서 그리스도만이 유일한 길이요 진리요 생명임을 담대히 선포할 때, 비로소 시대의 안개를 걷어내고 방황하는 영혼들을 이끄는 등대의 사명을 감당하게 될 것이다.
진리의 선명성을 잃어버린 시대는 본질을 외면하고 현상에 집착한다. 정부 종무실의 답변은 단순히 행정적 미숙함이 아니다. 이는 종교, 특히 기독교를 한국 사회의 중요한 파트너로 인정하지 않으려는, 혹은 그 가치를 애써 축소하려는 시대적 분위기를 반영한다. 교회 역시 이러한 흐름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절대 진리를 말하기보다 대중의 귀에 듣기 좋은 ‘영성’과 ‘체험’을 설파하며 스스로 복음의 날을 무디게 만들고 있다. 스페인 교회의 사례처럼, 요가와 프리메이슨 같은 이질적 사상이 기독교의 이름으로 포장되어 강단에 스며드는 것은 교회가 진리의 파수꾼이라는 정체성을 망각한 결과다.
역사는 우리에게 준엄한 교훈을 남긴다. 1521년, 신성로마제국 황제 카를 5세 앞에 선 마르틴 루터는 자신의 모든 저술을 철회하라는 요구에 직면했다. 그의 앞에는 거대한 권력과 회유, 그리고 죽음의 위협이 놓여 있었다. 시대는 그에게 타협과 모호함의 길을 강요했다. 그러나 루터는 “여기 내가 서나이다. 나는 달리 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 나를 도우소서(Hier stehe ich. Ich kann nicht anders. Gott helfe mir)”라고 외치며 자신의 신앙을 선명하게 고백했다. 그의 고백은 중세의 짙은 안개를 걷어내는 한 줄기 빛이었으며, 종교개혁의 위대한 서막을 열었다. 그는 모호함의 시대에 가장 선명한 진리의 언어로 응답했던 것이다.
오늘 한국 교회에 필요한 것은 바로 이 ‘루터의 고백’이다. 세상과의 적당한 타협이나 시대정신에 편승하는 유연함이 아니라, 오직 성경 위에 굳건히 서서 복음의 진리를 명료하게 선포하는 용기다. 네덜란드의 젊은이들이 신앙 안에서 방향과 안정을 찾고 있다는 소식은 우리에게 희망을 준다. 그들이 찾는 것은 세련된 프로그램이나 감각적 유희가 아니라, 흔들리지 않는 진리의 반석이다. 교회는 이들의 영적 갈증에 혼탁한 물이 아닌 생명의 샘물로 답해야 한다.
에베소서 4장 14절에서 15절은 이렇게 말씀한다. “이는 우리가 이제부터 어린 아이가 되지 아니하여 사람의 속임수와 간사한 유혹에 빠져 온갖 교훈의 풍조에 밀려 요동하지 않게 하려 함이라 오직 사랑 안에서 참된 것을 하여 범사에 그에게까지 자랄지라 그는 머리니 곧 그리스도라.” 교회가 다시 한번 진리의 허리띠를 동여매고, 세상의 모든 모호한 가르침 앞에서 그리스도만이 유일한 길이요 진리요 생명임을 담대히 선포할 때, 비로소 시대의 안개를 걷어내고 방황하는 영혼들을 이끄는 등대의 사명을 감당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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