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마른 땅과 전쟁의 포화 속에서, 교회의 본질을 묻다
한국교회공보 기자
작성일 2026-08-26 07:10
본문
유럽 대륙이 수백 년 만의 가뭄으로 타들어가고, 우크라이나의 도시는 전쟁의 포화로 신음하고 있다. 한쪽에서는 생명의 근원인 물이 말라붙은 땅의 갈라진 틈으로 절규가 새어 나오고, 다른 한쪽에서는 무고한 피가 스며든 땅 위로 슬픔의 강이 흐른다. 이처럼 문명의 심장부에서 터져 나오는 신음은 인류가 직면한 위기의 총체적 단면을 보여준다. 바로 이 지점에서 우리는 교회의 본질적 사명과 나아갈 방향을 다시금 묻지 않을 수 없다.
오늘의 시대는 단순히 물리적 가뭄과 전쟁의 위협에만 직면한 것이 아니다. 인공지능이라는 거대한 기술적 파고는 신앙의 본질적 과정마저 위협하며, 쉽고 편리한 답을 제공함으로써 고뇌와 묵상, 기다림이라는 성숙의 과정을 생략하려 한다. 이는 마치 목마른 자에게 바닷물을 건네는 것과 같다. 당장의 갈증은 해소되는 듯하지만, 결국 더 극심한 영적 갈증과 공허로 이끌 뿐이다. C.S. 루이스가 그의 저서 '스크루테이프의 편지'에서 묘사했듯, 악마는 인간을 거창한 악으로 넘어뜨리기보다, 세상의 소음과 편리함, 사소한 분주함으로 영혼을 잠식시켜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게 만든다. 인공지능이 제시하는 '맞춤형 신앙'의 유혹은 바로 이 시대의 스크루테이프가 내미는 가장 세련된 독배일 수 있다.
이러한 시대적 도전 앞에서 스위스 니젠 산 정상에 오른 목회자들의 연합 기도회는 교회가 가야 할 길을 상징적으로 제시한다. 그들은 문제 해결을 위해 세상의 방법론을 좇거나 기술의 편리함에 의존하지 않았다. 대신 가장 높고 고요한 곳에 올라, 자신들이 섬기는 땅을 굽어보며 창조주 하나님께 부르짖었다. 이는 문제의 현장에서 한 걸음 물러나 하늘의 관점을 구하는 영적 행위이며, 모든 해답의 근원이 인간의 지혜가 아닌 하나님의 주권에 있음을 고백하는 신앙의 정수이다.
성경은 우리에게 경고한다. 예레미야 2장 13절은 “내 백성이 두 가지 악을 행하였나니 곧 그들이 생수의 근원되는 나를 버린 것과 스스로 웅덩이를 판 것인데 그것은 그 물을 가두지 못할 터진 웅덩이들이니라”고 말씀한다. 오늘날 한국 교회는 가뭄과 전쟁, 기술의 도전에 직면한 이 세계를 향해 무엇을 외쳐야 하는가. 스스로 판 터진 웅덩이, 즉 인간의 지혜와 기술, 물질적 풍요가 결코 영원한 해답이 될 수 없음을 선포해야 한다. 그리고 생수의 근원 되시는 하나님께로 돌아갈 것을 촉구해야 한다.
이제 한국 교회는 세상의 메마름을 치유하고 전쟁의 상처를 싸매는 사명을 감당해야 한다. 우크라이나의 폐허 속에서 헌신하는 교회들처럼 고통의 현장으로 나아가야 하며, 스위스의 목회자들처럼 세상을 품고 무릎 꿇어야 한다. 편리함의 유혹을 분별하고, 고통스럽더라도 진리를 향한 순례의 길을 묵묵히 걸어가야 한다. 그것만이 터진 웅덩이 앞에서 절망하는 세상에 유일한 생수의 근원을 가리키는 교회의 본질적 사명을 다하는 길이다.
오늘의 시대는 단순히 물리적 가뭄과 전쟁의 위협에만 직면한 것이 아니다. 인공지능이라는 거대한 기술적 파고는 신앙의 본질적 과정마저 위협하며, 쉽고 편리한 답을 제공함으로써 고뇌와 묵상, 기다림이라는 성숙의 과정을 생략하려 한다. 이는 마치 목마른 자에게 바닷물을 건네는 것과 같다. 당장의 갈증은 해소되는 듯하지만, 결국 더 극심한 영적 갈증과 공허로 이끌 뿐이다. C.S. 루이스가 그의 저서 '스크루테이프의 편지'에서 묘사했듯, 악마는 인간을 거창한 악으로 넘어뜨리기보다, 세상의 소음과 편리함, 사소한 분주함으로 영혼을 잠식시켜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게 만든다. 인공지능이 제시하는 '맞춤형 신앙'의 유혹은 바로 이 시대의 스크루테이프가 내미는 가장 세련된 독배일 수 있다.
이러한 시대적 도전 앞에서 스위스 니젠 산 정상에 오른 목회자들의 연합 기도회는 교회가 가야 할 길을 상징적으로 제시한다. 그들은 문제 해결을 위해 세상의 방법론을 좇거나 기술의 편리함에 의존하지 않았다. 대신 가장 높고 고요한 곳에 올라, 자신들이 섬기는 땅을 굽어보며 창조주 하나님께 부르짖었다. 이는 문제의 현장에서 한 걸음 물러나 하늘의 관점을 구하는 영적 행위이며, 모든 해답의 근원이 인간의 지혜가 아닌 하나님의 주권에 있음을 고백하는 신앙의 정수이다.
성경은 우리에게 경고한다. 예레미야 2장 13절은 “내 백성이 두 가지 악을 행하였나니 곧 그들이 생수의 근원되는 나를 버린 것과 스스로 웅덩이를 판 것인데 그것은 그 물을 가두지 못할 터진 웅덩이들이니라”고 말씀한다. 오늘날 한국 교회는 가뭄과 전쟁, 기술의 도전에 직면한 이 세계를 향해 무엇을 외쳐야 하는가. 스스로 판 터진 웅덩이, 즉 인간의 지혜와 기술, 물질적 풍요가 결코 영원한 해답이 될 수 없음을 선포해야 한다. 그리고 생수의 근원 되시는 하나님께로 돌아갈 것을 촉구해야 한다.
이제 한국 교회는 세상의 메마름을 치유하고 전쟁의 상처를 싸매는 사명을 감당해야 한다. 우크라이나의 폐허 속에서 헌신하는 교회들처럼 고통의 현장으로 나아가야 하며, 스위스의 목회자들처럼 세상을 품고 무릎 꿇어야 한다. 편리함의 유혹을 분별하고, 고통스럽더라도 진리를 향한 순례의 길을 묵묵히 걸어가야 한다. 그것만이 터진 웅덩이 앞에서 절망하는 세상에 유일한 생수의 근원을 가리키는 교회의 본질적 사명을 다하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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