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개혁, '교회의 재탄생' 아닌 '개혁'… 정통 신학계, 5가지 오해 지적
김형석 기자 기자
작성일 2026-06-23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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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개혁 500주년을 넘어선 오늘날, 개혁주의 신학계는 종교개혁에 대한 일부 통념에 대해 재조명하고 있다. 특히 ‘정통 신학의 회복을 위한 복음주의’(Theological Retrieval for Evangelicals)라는 기치 아래, 가빈 오틀런드(Gavin Ortlund) 저, ‘종교개혁에 관한 5가지 오해’(Myths about the Reformation)와 같은 저작들을 통해 종교개혁의 본질을 정확히 이해하려는 노력이 이어지고 있다. 이 책은 종교개혁의 역사적 맥락과 목표를 정확히 평가하면서도, 개혁주의 정체성을 잃지 않고 역사 신학과의 교류를 통해 현대 교회가 어떻게 풍요로워질 수 있는지 제시한다.
**종교개혁, '교회의 재탄생' 아닌 '개혁'**
가장 흔한 오해 중 하나는 종교개혁이 마치 죽었던 교회가 다시 살아난 '재탄생'이었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종교개혁가들은 교회가 완전히 소멸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어두운 부패 속에서도 교회를 보존해 오셨다고 믿었다. 따라서 그들의 사역은 교회의 '재탄생'이 아닌 '개혁'이었다. 마르틴 루터는 로마 교회가 타락했음에도 불구하고 “오늘날에도 우리는 로마 교회를 거룩하다고 부르며, 그 모든 좌석을 거룩하다고 부른다”고 말하며 교회의 연속성을 강조했다. 요한 칼뱅 역시 마태복음 28장 20절을 근거로 “그리스도의 교회는 아버지 우편에 앉아 계신 그리스께서 통치하시는 한 살아남았고 앞으로도 살아남을 것”이라며 교회의 생명력을 역설했다. 후대의 개혁주의 신학자들, 예를 들어 프란시스 투레틴(Francis Turretin)은 “우리의 교회는 바벨론 자체 안에 있었으며, 하나님께서는 은혜로 택함 받은 자들의 남은 자를 항상 바벨론 가운데서 보존하셨다”고 주장하며, 이러한 주장은 급진적 분리주의자들과 구별되는 역사적 종교개혁의 특징을 보여준다.
**과거 부정 아닌 '고대 교회 회복' 시도**
종교개혁이 과거의 전통을 부정하고 오직 성경만을 내세웠다는 주장 역시 잘못된 통념이다. 실제 개혁가들은 초기 교부들의 증언을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요한 칼뱅은 그의 저서 ‘기독교 강요’ 서문에서 교부들이 로마 가톨릭과 달리 개혁주의적 입장을 지지했음을 상세히 기록했다. 존 주얼(John Jewel)의 ‘영국 교회 변증’(Apology for the Church of England) 역시 다양한 교부들의 글을 통해 성경과 교회의 개혁주의적 이해를 확립하려 했다. 칼뱅은 1539년 추기경 사돌레토(Sadoleto)와의 논쟁에서 “우리가 시도한 모든 것은 교회의 고대 형태를 갱신하는 것이었다”고 밝히며, 종교개혁이 과거의 부정이라기보다는 ‘고대 교회의 회복’을 목표로 했음을 분명히 했다.
**선례 없는 사건 아닌 '연속된 저항의 흐름'**
종교개혁이 아무런 선례 없이 갑자기 발생한 사건이라는 주장도 사실과 다르다. 마르틴 루터 이전에도 로마 교회의 부패에 저항한 인물들이 있었다. 14세기 영국의 존 위클리프(John Wycliffe)와 15세기 보헤미아의 얀 후스(Jan Hus)는 종교개혁의 선구자로 꼽힌다. 12세기 아놀드주의자(Arnoldists)와 발도파(Waldensians), 12-13세기 알비파(Albigensians) 등 더 거슬러 올라가는 저항 전통도 존재한다. 프란시스 투레틴은 발도파와 알비파를 ‘더 순수한 그리스도인들’이라 칭하며 “본질에 있어서 우리와 같은 믿음을 가졌다”고 평가했다. 또한 투레틴은 분리주의 그룹이 아닌 교회 내부에서 발생한 저항, 예를 들어 794년 프랑크푸르트 공의회의 우상 숭배 비판이나 9세기 라트라무스(Ratramnus), 11세기 베렝가리우스 투르스(Berengar of Tours)의 성찬론에 대한 반대 등을 지적하며 종교개혁이 역사적 저항의 흐름 속에 있었음을 강조했다.
**분열된 교회 상속, '새로운 분열' 아냐**
종교개혁이 교회를 분열시켰다는 비판도 있지만, 이는 당시 교회의 상황을 정확히 반영하지 못한다. 개혁가들은 이미 동서방 교회의 분열(1054년)로 나뉘어 있던 교회를 상속받았다. 또한 중세 말 로마 가톨릭 교회는 이미 다양한 내부적 갈등과 분열의 요소를 안고 있었다. 따라서 종교개혁은 새로운 분열을 야기한 것이 아니라, 이미 존재하던 분열 속에서 발생한 개혁 운동으로 이해해야 한다는 것이 정통 신학계의 분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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