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립 샤프의 '기독교 신조사' 1권, 잉글랜드 종교개혁의 핵심 문헌 '에드워드 6세 42개조' 심층 분석
김형석 기자 기자
작성일 2026-08-28 09:00
본문
필립 샤프(Philip Schaff, 1819-1893)가 저술하고 1877년 출간된 '기독교 신조사, 제1권: 신조의 역사'(Creeds of Christendom, with a History and Critical notes. Volume I. The History of Creeds. by Schaff, Philip)는 기독교 신앙의 근간을 이루는 신조들의 역사적 형성과정을 심도 있게 다룬 역작이다. 특히 본 1권은 잉글랜드 종교개혁의 중요한 신학적 산물인 '에드워드 6세 42개조'(The Edwardine Articles, A.D. 1553)를 집중적으로 조명하며 당시의 복잡한 종교개혁의 맥락을 상세히 기술한다.
샤프는 19세기 독일계 미국인 개혁주의 신학자로, 방대한 자료 조사를 통해 기독교 신조의 역사적 발전 과정을 객관적으로 서술하는 데 탁월한 업적을 남겼다. 그의 저작은 특정 교파의 입장을 넘어 보편적인 기독교 신앙의 흐름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통찰을 제공한다. '기독교 신조사'는 종교개혁 시기 유럽 전역의 다양한 신조들을 체계적으로 정리하고 분석함으로써, 개혁주의 신학의 정통성을 확립하고 후대에 올바른 신앙의 지침을 제공하고자 하는 시대적 요구에 부응했다.
본 서평에서 다루는 '에드워드 6세 42개조'는 잉글랜드 종교개혁의 절정기에 토머스 크랜머(Thomas Cranmer) 주교를 중심으로 작성된 문서이다. 1547년 에드워드 6세의 즉위와 함께 잉글랜드 교회는 급진적인 개혁의 길을 걷게 되었고, 기존의 '6개조'(Six Articles)는 폐지되었다. 크랜머는 독일 및 스위스 종교개혁가들과 협력하여 '복음적 가톨릭 신조'를 수립하려는 야심 찬 계획을 세웠으나, 이는 결국 무산되고 순수한 잉글랜드의 공적 신앙 고백인 '42개조' 제정으로 이어졌다.
이 42개조는 1552년 11월에 완성되어 1553년 왕실의 승인과 런던 시노드(Synod)의 동의를 얻어 공표되었다. 이 문서는 라틴어 원문과 영어 번역본으로 전해지며, 후대의 '엘리자베스 1세 39개조'(Elizabethan Articles)와 비교 연구의 대상이 된다. 샤프는 이 문서의 저작권이 주로 크랜머에게 있음을 밝히면서도, 동료 주교들과 학자들, 그리고 당시 잉글랜드에 체류하던 외국 신학자들의 자문이 상당 부분 반영되었음을 시사한다. 존 녹스(John Knox)와 같은 인물들도 이 문서 작성 과정에 참여하여, 특히 성찬례 시 무릎 꿇는 예식에 대한 논쟁을 통해 '무릎 꿇음에 관한 선언'(Declaration on Kneeling)이 추가되는 등 신학적 논쟁의 결과가 반영되기도 했다.
'에드워드 6세 42개조'는 후대의 '39개조'와 본질적으로 동일하나, 몇 가지 조항이 수정되거나 삭제되었다. 예를 들어, 성령 모독에 관한 조항(Art. XVI.), 도덕법 준수의 의무에 관한 조항(Art. XIX.), 부활에 관한 조항(Art. XXXIX.), 영혼의 상태에 관한 조항(Art. XL.), 천년왕국설에 대한 반박(Art. XLI.), 만인구원설에 대한 반박(Art. XLII.) 등이 삭제되었다. 또한 그리스도의 음부 강하(Art. III.) 조항의 일부와 그리스도의 몸의 편재성, 성찬례에서의 그리스도의 실제적이고 육체적인 임재에 대한 강력한 반박 조항(Art. XXIX.) 역시 삭제되었다.
정통 신학계 전문가들은 '에드워드 6세 42개조'가 잉글랜드 교회의 신학적 정체성을 확립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으나, 일부 조항의 삭제 및 수정 과정에서 개혁주의 신학의 핵심 원리가 희석될 수 있다는 점을 지적한다. 특히 성찬례에 대한 논쟁과 관련된 조항들의 변화는 당시 종교개혁 세력 내부의 신학적 이견을 보여주는 단면으로 분석된다. 샤프의 '기독교 신조사'는 이러한 역사적 문헌들을 객관적으로 제시함으로써, 후대 신학자들이 기독교 신앙의 본질을 올바로 이해하고 정통 신학의 맥을 이어가는 데 귀중한 자료를 제공하고 있다.
샤프는 19세기 독일계 미국인 개혁주의 신학자로, 방대한 자료 조사를 통해 기독교 신조의 역사적 발전 과정을 객관적으로 서술하는 데 탁월한 업적을 남겼다. 그의 저작은 특정 교파의 입장을 넘어 보편적인 기독교 신앙의 흐름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통찰을 제공한다. '기독교 신조사'는 종교개혁 시기 유럽 전역의 다양한 신조들을 체계적으로 정리하고 분석함으로써, 개혁주의 신학의 정통성을 확립하고 후대에 올바른 신앙의 지침을 제공하고자 하는 시대적 요구에 부응했다.
본 서평에서 다루는 '에드워드 6세 42개조'는 잉글랜드 종교개혁의 절정기에 토머스 크랜머(Thomas Cranmer) 주교를 중심으로 작성된 문서이다. 1547년 에드워드 6세의 즉위와 함께 잉글랜드 교회는 급진적인 개혁의 길을 걷게 되었고, 기존의 '6개조'(Six Articles)는 폐지되었다. 크랜머는 독일 및 스위스 종교개혁가들과 협력하여 '복음적 가톨릭 신조'를 수립하려는 야심 찬 계획을 세웠으나, 이는 결국 무산되고 순수한 잉글랜드의 공적 신앙 고백인 '42개조' 제정으로 이어졌다.
이 42개조는 1552년 11월에 완성되어 1553년 왕실의 승인과 런던 시노드(Synod)의 동의를 얻어 공표되었다. 이 문서는 라틴어 원문과 영어 번역본으로 전해지며, 후대의 '엘리자베스 1세 39개조'(Elizabethan Articles)와 비교 연구의 대상이 된다. 샤프는 이 문서의 저작권이 주로 크랜머에게 있음을 밝히면서도, 동료 주교들과 학자들, 그리고 당시 잉글랜드에 체류하던 외국 신학자들의 자문이 상당 부분 반영되었음을 시사한다. 존 녹스(John Knox)와 같은 인물들도 이 문서 작성 과정에 참여하여, 특히 성찬례 시 무릎 꿇는 예식에 대한 논쟁을 통해 '무릎 꿇음에 관한 선언'(Declaration on Kneeling)이 추가되는 등 신학적 논쟁의 결과가 반영되기도 했다.
'에드워드 6세 42개조'는 후대의 '39개조'와 본질적으로 동일하나, 몇 가지 조항이 수정되거나 삭제되었다. 예를 들어, 성령 모독에 관한 조항(Art. XVI.), 도덕법 준수의 의무에 관한 조항(Art. XIX.), 부활에 관한 조항(Art. XXXIX.), 영혼의 상태에 관한 조항(Art. XL.), 천년왕국설에 대한 반박(Art. XLI.), 만인구원설에 대한 반박(Art. XLII.) 등이 삭제되었다. 또한 그리스도의 음부 강하(Art. III.) 조항의 일부와 그리스도의 몸의 편재성, 성찬례에서의 그리스도의 실제적이고 육체적인 임재에 대한 강력한 반박 조항(Art. XXIX.) 역시 삭제되었다.
정통 신학계 전문가들은 '에드워드 6세 42개조'가 잉글랜드 교회의 신학적 정체성을 확립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으나, 일부 조항의 삭제 및 수정 과정에서 개혁주의 신학의 핵심 원리가 희석될 수 있다는 점을 지적한다. 특히 성찬례에 대한 논쟁과 관련된 조항들의 변화는 당시 종교개혁 세력 내부의 신학적 이견을 보여주는 단면으로 분석된다. 샤프의 '기독교 신조사'는 이러한 역사적 문헌들을 객관적으로 제시함으로써, 후대 신학자들이 기독교 신앙의 본질을 올바로 이해하고 정통 신학의 맥을 이어가는 데 귀중한 자료를 제공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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