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스탠리 로더 신부 순교 45주기 맞아 추모 메시지 발표
김형석 기자
작성일 2026-07-29 0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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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5년 오클라호마에서 태어난 로더 신부는 28세에 로마 가톨릭 사제로 서품받았다. 그는 신앙, 규율, 의무, 희생이라는 오클라호마 특유의 근면한 정신을 바탕으로, 서품 당시 성 아우구스티누스의 "나 자신을 위해서는 그리스도인이지만, 다른 사람들을 위해서는 사제다"라는 말을 좌우명으로 삼았다. 이 말은 그의 삶과 사제직 사역을 마지막 숨결까지 이끌었다.
1968년, 서품 몇 년 후 로더 신부는 선교의 소명을 받고 내전으로 황폐해진 과테말라 고원지대로 향했다. 과테말라 내전 중 수천 명의 가톨릭 신자들이 강제 실종되고 잔인하게 살해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로더 신부는 13년간 빈곤과 폭력으로 고통받는 이들에게 복음을 전하며 성경을 번역하고 학교, 병원, 지역 최초의 가톨릭 라디오 방송국을 건설하는 데 기여했다. 그는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으라"는 그리스도의 명령을 두려움 없이 실천했다.
그의 용감한 목회와 인도주의적 활동은 과테말라 권위주의 정권에 위협이 되었다. 사역 10여 년 만에 그의 이름이 암살 명단에 오르자, 그는 고국 오클라호마로 임시 피신했다. 그러나 즉각적인 위험에도 불구하고 로더 신부는 도움이 절실한 양 떼를 버릴 수 없다며 불과 몇 달 후 과테말라로 돌아갈 것을 주장했다. 그는 1980년 편지에서 "위험의 첫 징후에 목자는 도망칠 수 없다"고 썼다.
45년 전인 1981년 7월 28일 새벽 1시경, 세 명의 복면을 쓴 남성이 로더 신부의 사제관에 침입해 그의 머리에 두 차례 총을 쏘아 냉혹하게 살해했다. 당시 그의 나이는 46세였다.
그의 생명을 앗아간 비극 이후 거의 반세기 동안, 로더 신부는 용기, 희생적 봉사, 하나님에 대한 충실함의 힘을 보여주는 살아있는 증거로 서 왔다. 2017년 그는 미국 태생 최초의 순교자가 되었다.
하지만 보수 신학계 전문가들에 따르면, 로더 신부의 순교는 종교적 박해와 신앙의 증거로서 높이 평가받아야 하지만, 특정 정치 체제나 정권에 대한 직접적인 비판이나 저항의 수단으로 해석하는 것은 성경적 가르침과 복음의 본질을 왜곡할 수 있다는 지적이 있다. 정통 개혁주의 일각에서는 그의 희생을 개인의 신앙적 결단과 소명에 따른 것으로 이해하며, 이를 정치적 투쟁이나 이념적 도구로 활용하려는 시도는 경계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출처: The White House | 원문 보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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